열린 마음 (2016.05)

2020. 12. 27. 01:5042 송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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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청남도 미디어 PLUS

 

 음각으로 새겨진 두 개의 표지석이 있다. 洗心洞(세심동)과 開心寺(개심사). '마음을 씻고 문을 열라'고 한다.

 

 그동안 걸어 잠갔던 마음을 열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보자.

 

 이곳은 중학교 봄소풍 때 와보고 60년 만이다. 지난 세월이 필름같이 지나간다. 어려서부터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고집세고 잘난 척하다가 엎어지고 일어난 것이 몇 번이던가. 고달픈 삶 속에서 까맣게 잊고 지내다 경지(鏡池)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니 삼단 같던 머리털과 풋풋하던 소녀는 어디가고 흰서리를 맞은 할머니가 서 있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었다면 지금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제대로 차근차근 준비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서둘다 일을 그르친 적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사실 준비할 시간도 충분히 없었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지냈다. 기회를 얻지 못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씨를 뿌릴 때 뿌리고 새싹이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는 가꿔줘야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젊어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평생 고생이다. 마음만 바쁘다고 일이 이뤄지는 것도 아닌데 각박하게 살다보면 괜히 바쁘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 나이만 더했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만 빙빙 돈 셈이다.

 

 대학교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된 사건은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20여 년이 넘게 많은 고난 속에 봉착했지만 주저앉지는 않았었다.

 

 줄줄이 딸린 아홉 식구들의 생활이 먼저이다 보니 내가 꾸던 원대한 꿈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부딪혀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하고 체념하며 쓰라린 가슴을 스스로 다독이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성격이 팔자라고 길이 없으면 만들고 막히면 뚫으면서 살아왔다. 나는 어쩜 운명에 도전하며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해왔다고 자부한다. 그 결과 준정부 기관의 상임이사와 감사도 지냈다.

 

 권사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었지만 뒤늦게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며 종교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70평생 신의를 지키고 올곧게 살려고 열정을 다했기에 고개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 늦더라도 희망의 메시지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감사를 보낸다. 많은 시간 잠 못 이루며 고뇌하던 일들이 작은 열매를 맺어 토대를 이루고 주렁주렁 행복을 선사해준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상큼한 풀냄새가 가득하고 흐르는 계곡물이 햇볕에 더욱 맑다. 종심(從心)이 되어도 욕심이 꽉 차 있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내가 빠지면 큰일날 것 같은 일들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간다. 그런 것이 모두 부질없는 욕심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초심을 잡고 준비를 하면 노년이 되어도 조바심 할 일이 없다. 반 박자 느린 걸음으로 길을 따르니 마음이 창을 내고 숨을 쉰다.

 

 맑은 공기 속에서 여유롭게 음미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마음은 씻으려고 해서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고의 세월이 지나 허허로워져야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정화된다. 마음이 열리면 눈이 열리고 자연의 순리가 보이고 미래가 보인다.

 

 은빛 머리가 석양의 노을을 받으니 금빛으로 물든다.

 

 모든 것 쏟아놓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세심동과 개심사, 표지석에 가만히 이정표를 새긴다.

 

 

 

- 홍사임, 고갯마루에 올라 p.14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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