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2017.09)

2020. 12. 28. 00:0042 송산의 삶

728x90
반응형

Image by 재현 김 from Pixabay

 

 모처럼 유람선을 탔다. 물의 일렁임이 볼 때와는 다르게 더 크게 다가온다.

 

 보기에는 서울이 한강을 둘러싸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한강이 주변의 서울을 품고 있다. 하늘과 구름까지도.

 

 한강은 40여 년 전 만해도 봄에는 강변에 달래, 냉이, 쑥이 다보록이 자라 서민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그때 나는 옆집 아줌마를 따라 쑥도 뜯고 냉이를 캐다가 된장국도 끓이며 흐뭇해했다. 내 아이 다섯이 줄줄이 자랄 때는 미역 감고 물놀이할 만한 곳이 없어서 여름방학 때면 아이들과 가끔 가던 곳이 뚝섬이었다. 뚝섬에서 실컷 물놀이하고 나서 나무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펼쳐 놓으면 아이들이 그리 좋아했다.

 

 한동안 지우개로 지우듯 하얗던 마음이 망각의 고리를 벗기고 갇혀있던 기억을 하나씩 일깨우고 있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지만 희망의 끈을 찾고자 이곳에 와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뚫리기도 하였다. 강기슭에서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갈대를 보면서 강인함에 감동을 받고 힘을 얻었다.

 

 강가를 따라 갈대와 억새와 코스모스가 핀 길을 산책하는 연인들은 애틋한 정을 나누며 밀어를 속삭인다.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드넓은 한강은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강변에 레저 스포츠 명소가 자리 잡고 인공섬에는 자연 학습장이 있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물은 한강으로 모여들기 위해 빗방울로 시작해서 냇물이 강물이 되기까지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와 짐승의 갈증을 풀어주며 물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하천의 물도 공장 폐수도 다 받아들이며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일천삼백리 한강의 원류는 한국의 척추인 태백산맥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어울려 합수되고 또 임진강은 파주에서 합류하여 서해로 흐른다.

 

 서울을 탄생시킨 한가람은 모태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강이기에 우리 민족의 어머니다.

 

 수수만년 전부터 한강의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강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헤어진다.

 

 어쩌면 가장 깊은 곳에 선지피보다 더 검붉은 한을 가슴깊이 묻은 채 옳고 그르고 깨끗하고 추하고를 따지지 않고 모든 사연을 받아주며 품에 안고 함께 서해의 큰 바다 태평양까지 나아간다.

 

 서쪽 하늘의 해가 강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하구 전체가 붉은 노을을 머금고 오색의 찬란한 빛이 한강을 신비롭게 물들인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불꽃의 향연을 벌이고 온통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해낸다. 하늘이 캄캄해지면 강 속에는 하나, 둘 별이 나타나 보석처럼 빛난다. 그리고 강변의 모든 불빛을 받아들여 같이 어울린다.

 

 생명의 젖줄이 이처럼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것은 축복이고 자랑이다. 한강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사랑으로 가득하고 아무리 퍼내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강이다.

 

 그동안 무심코 흘려보냈던 강물에 마음을 조용히 담아본다. '나는 과연 한강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며 살아왔던가' 무한한 깨달음이 생긴다.

 

 강을 따라 나도 강이 된다. 노을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솔하게 보인다. 현자요수(賢者樂水)라고 하는데 나도 강처럼 도도하게 흐르면서 물처럼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 홍사임, 고갯마루에 올라 p.72-74

728x90
반응형

'42 송산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을 기다리는 길목  (0) 2021.01.02
삶이란 (2018.02)  (0) 2020.12.30
열린 마음 (2016.05)  (0) 2020.12.27
머무는 자리 (2017.11)  (0) 2020.12.27
그해 6월  (0) 202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