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막내아들

2020. 12. 17. 12:0034 봄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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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대전 현충원 (출처: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5월 중순이면 연둣빛 나뭇잎이 초록빛으로 짙어가고 9월 하순부터 오곡이 익어간다. 우리 가족은 매년 5월과 9월에는 대전 현충원으로 아들을 찾아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점에서 꽃 한 단을 사 들고 묘소로 간다. 

 묘역에 들어서면 열병식이라도 하는 것 같다. 대와 오가 정연한 묘비가 관등 성명을 달고 늠름한 자세로 저마다 꽃다발을 안고 도열하고 있다. 나는 사열관이라도 된 것처럼 이 구역 저 구역을 돌아 119구역으로 아들 묘를 찾아간다. 빛바랜 꽃을 갈아 꽂고 그의 묘비 앞에 자리를 깔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그와 점심을 먹으며 손자들한테 저희 삼촌 이야기를 해준다. 손질이 잘된 잔디는 파란 양탄자다. 줄지어 서 있는 묘비는 계급순도 키순도 아닌 현충원 전입 순이다. 열병식이었다면 키 큰 병사가 앞줄에 서고 키순으로 도열을 했을 것이다. 그리 섰더라면 우리 아들은 저 뒤쪽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나 앞에서 다섯째 줄 오른쪽 나무 울타리 옆이 그의 자리다. 묘비 앞면에는 관등 성명이, 뒷면에는 우리네 주민등록번호 같은 9785란 일련번호와 전사지와 사망한 날만 있을 뿐 출생지나 학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평등한 곳이다.

 계룡산 록이 삼태기처럼 둘러싸인 현충원의 5월은 파릇한 새순이 싱그럽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9월 하순이면 하늘은 창공이다. 그가 태어난 5월은 꽃이 만발한 축복의 계절이었는데 9월은 그가 저 높은 하늘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 여행을 떠난 창공이다.

 우린 딸 하나에 아들 삼 형제를 낳았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주례사나 축사에 '부귀 다남하라'는 덕담을 관용어처럼 썼다. 우린 덕담대로 3남 1녀를 낳았다. 그 무렵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사회문제가 되어 가족계획 운동이 범사회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국가에서는 저출산 장려책으로 피임약이나 피임기구를 보급하고 정관수술을 무료로 시술해주면서 각종 특혜까지 주어가며 출산 억제책을 썼다. 항간에 유행어가 생겼다. 다섯을 낳으면 야만인이요, 넷은 미개인 셋은 문화인 둘은 현대인이라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아들딸 가리지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구호가 나돌더니 그게 현실화 되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넘고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출산율이 낮은 것이 도리어 사회 문제가 되어 지금은 출산 장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라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수십 년 후에는 국민이 없는 망국적 징후가 발생한다고 하니 이리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러고 보면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없는 위정자들이 나라를 다스려 온 것이다.

 

 우리는 딸 하나에 아들이 둘이라서 문화인 쪽에는 들겠다 싶었는데 얼떨결에 하나가 더 생겼다. 내가 전주에서 서울로 전근이 되고 아내는 지방 학교에 재직하고 있어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주말이면 서울과 전주를 오가다 넷째가 생겼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를 하자고 아내와 합의를 했는데 결국 낳았다. 당시 사회 풍조가 낙태를 죄라 생각지 않던 시절이라 우린 아무 죄의식 없이 아이를 뱃속에 두고 거리낌 없이 지워버리자고 한 것이다. 태아도 다 듣는다는데 부모란 자가 자기를 죽이자는 모의를 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무섭고 떨렸겠는가. 아내는 혼자서 세 아이를 기르면서 학교에 다니노라 병원 갈 시간도 없었다고도 하고 혼자서는 무서워 도저히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시기를 놓치고 출산한 아이가 넷째다. 주말에 내려가 아이를 보면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생각해보면 우린 그 아이에게 끔찍한 죄를 범할 뻔했다. 뱃속의 아이가 못 듣고 못 느끼는 줄로 알고 아무 거리낌 없이 낙태 모의를 했다. 태아가 부모의 이야기를 다 듣고 태어났으니 얼마나 엄마 아빠가 무섭고 두려웠겠는가? 무지의 탓이지만 뒤늦게야 태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 무지를 지금까지 후회하며 한탄한다.

 

 우리 아이들 중 첫째 둘째는 우리 부부가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낳아 길렀다. 셋째는 내가 3월에 서울로 전근이 되고 5월에 출생했으니 태아 때 약 2개월, 출생해서 근 3년 동안 주말 부부였다. 두 살 터울인 넷째는 임신 때부터 출생까지 아내 혼자서 낳고 기르다가 그해 12월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첫째와 둘째는 나를 잘 따르는데 셋째와 넷째는 기피한다. 셋째는 갓난애 때 내가 안기라도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어 안아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부뚜막에 앉혀 놓고 밥을 했다며 지금도 가끔 셋째 이야기를 한다. 자라는 동안 내내 저희 엄마 치마폭만 잡고 졸졸 따라다녀 심지어 병원에서 같은 날 난 아이와 바뀌지 않았느냐고 까지 했다. 태아 때부터 자주 보지 못해 낯선 아비가 두려웠던 것이다.

 

 넷째는 너무 온순하고 순종형이다. 성장하는 동안 아비 말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형이나 누나가 시키는 일도 군말 없이 다 들어주고 심부름도 그가 다 했다. 공부도 잘했지만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를 사주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컴퓨터 경진대회도 나가고 중창단 활동도 했다. 축제 때가 되면 이 학교 저 학교에 다니면서 노래도 불러주는 활동적인 아이였는데 집에만 오면 제 방에서 쥐죽은 듯이 있으며 제 할 일만 한다.

 

 대학을 마치고 군에 입대를 했다. 상사의 귀여움을 받으며 복무를 했다. 제대 말엽에 대대장이 낚싯대를 선물로 주었다며 자랑도 했다. 그런 아이가 제대 5일을 남기고 불의의 사고로 저승으로 갔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는데 태아 때 한 이야기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2012년은 임진년 용띠다. 용 중에도 흑룡띠라 베이비붐이 일 것 같다는 이야기다. 출산율이 낮아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는데 이런 붐이 이는 때 아이를 많이 낳으면 좋겠다. 육아와 교육은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책임을 진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는 아이를 건강하고 훌륭하게 기르는 일에만 열중했으면 좋겠다. 베이비붐이 일 것 같다니 임신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태교부터 정말 잘해야 한다. 아이를 훌륭하게 기르려거든 좋은 음악 듣고 명화도 감상하면서 태아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부모가 태아와 수시로 대화를 통해서 사랑한다며 배에 손을 얹고 사랑의 대화를 많이 하기 바란다.

 

 청명한 가을밤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초롱초롱한 별이 밤새 깜박이다 현충원 잔디밭에 내려앉는 것 같다. 수많은 부모들이 흘린 눈물이 영롱한 이슬로 맺혀 현충원 잔디밭에 이슬로 맺힌 것이리라.

 

 아들아, 어디쯤에서 네 화신인 별도 우리를 바라보고 깜박이고 있겠구나. 네가 떠난 9월이 되면 아비도 마당에 나와 밤하늘에 가물거리는 네 모습을 찾고 있단다.

 

 

- 김준태, 보고 들으며 걸어온 길 p.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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